영화 ‘돈룩업’은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재난 상황을 다루지만, 전형적인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닙니다. 서양식 블랙코미디를 가미해 정치, 언론, 대중 심리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지구의 위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무관심과 무기력을 꼬집습니다.
나쁜 소식 전달의 아이러니
‘돈룩업’은 두 천문학자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지구와의 충돌 궤도에 오른 거대한 혜성을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는 전 인류의 생존이 걸린 비극적인 발견이지만, 문제는 그 사실을 세상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입니다. 과학자들은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에게 직접 알리지만, 정치권은 다가올 재난을 선거 전략의 일부로만 바라보며 시급성을 무시합니다. 언론은 자극적인 소재를 선별해 가십성 뉴스로 편집하고, 대중은 혜성 충돌이라는 현실보다 유명인의 연애 소식과 인터넷 밈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서양식 블랙코미디의 특유한 과장법과 풍자 기법이 여기에 녹아 있어, 절망적인 재난 상황조차도 웃음거리로 소비되는 현실을 비추죠. 관객은 이를 보며 “실제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불편한 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재난영화의 틀을 깨는 전개
전통적인 재난영화는 위기→대응→극복의 서사 구조를 따르며, 최종적으로 인류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는 낙관적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돈룩업’은 이러한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위기→무시→자멸이라는 비관적인 구조를 택합니다. 영화 속에서 과학적 근거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이익 앞에서 왜곡되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계속해서 미뤄집니다. 그 사이 혜성은 점점 지구에 가까워지고, 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화려한 특수효과보다는 인물 간의 대사와 상황 설정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인물들의 엇갈린 반응과 계산적인 태도는 긴장감을 쌓아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블랙코미디 특유의 허무함과 냉소가 장면마다 스며 있습니다. 관객은 웃다가도 곧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감정이 영화가 주는 가장 강한 여운이 됩니다.
메시지와 현실의 불편한 평행선
‘돈룩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합니다. 위기가 눈앞에 다가와도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며, 불편한 진실을 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위로 보지 마’라는 구호는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대중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집단적 외면을 상징합니다. 케이트는 과학자로서 분노와 절망을 숨기지 않으며, 관객이 느껴야 할 위기감을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물들은 개인적인 명예, 이익, 욕망에 몰두하며 현실을 부정합니다. 이는 기후 위기, 전염병, 정치적 갈등 등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목격한 수많은 사건과 닮아 있습니다. 특히 SNS와 미디어가 진실보다 자극적인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는 현실과 영화의 상황은 놀라울 정도로 평행선을 그립니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웃음을 주지만, 그 웃음 뒤에 숨은 씁쓸함은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돈룩업’은 서양식 블랙코미디와 재난영화를 결합해 재난의 스펙터클보다 사회가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의 허술함을 드러냅니다. 웃음으로 포장된 절망, 그리고 절망을 무시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영화를 본 관객에게 “우리는 과연 다를까?”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장르적 재미와 사회적 성찰을 동시에 제공하는, 보기 드문 현대 재난 영화입니다.